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세속을 품은 성당의 화려한 실험

by 마기슬 2025. 4. 17.

화려함과 장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네오바로크 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을 넘어, 시대의 미적 감각과 세속의 욕망까지 함께 품은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세속을 품은 성당'이라는 주제는 이 장식 과잉의 미학이 단순히 형식의 과잉이 아닌,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변화를 담은 실험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세속을 품은 성당의 화려한 실험
세속을 품은 성당의 화려한 실험

 

네오바로크의 부활과 특징

네오바로크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그 외 지역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바로크 시대의 미학을 다시 불러온 복고 양식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고, 바로크의 과장된 곡선과 강렬한 볼륨감을 새로운 감성으로 재해석하며, 당대의 기술과 재료를 접목시켜 독자적인 인상을 구축했습니다. 특히 교회와 성당 같은 종교 건축에 도입되면서, 이 양식은 영적 감흥을 극대화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지요.

 

네오바로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과도할 정도로 화려한 장식입니다. 기둥 하나, 창문 하나에도 복잡한 곡선과 금박, 대리석 조각이 동원되며, 건축 자체가 예술품이 되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장식은 기능보다 감정의 전달을 우선시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과 황홀함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네오바로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를 읽는 코드가 됩니다.

 

또한, 네오바로크는 절대성과 권위를 시각화하는 도구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왕정이나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전, 법정, 오페라 극장 등에 이 양식이 유행한 것처럼, 성당 역시 신의 권능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때부터 성당은 단순한 기도와 제사의 장소를 넘어서, 하나의 ‘스펙타클’이 되는 무대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장식 과잉의 미학적 의미

장식 과잉이라는 평가는 종종 부정적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하지만 네오바로크 건축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장식은 기능을 넘어서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방문자의 감정을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가 됩니다. 천장의 프레스코화, 성화상 주변의 장식 프레임, 기둥에 새겨진 이중·삼중 나선은 보는 이의 시선을 끊임없이 끌어들이며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장식은 단지 아름다움이나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욕망과 긴장까지 반영하고 있습니다. 산업화로 인해 생긴 계급 간의 거리, 시민사회의 복잡성, 종교적 권위의 약화 등 당시 유럽 사회의 균열을 감추기 위해 장식은 일종의 시각적 봉합재로 기능한 것입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은 오히려 내부의 불안을 은폐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장식의 과잉은 그 자체로 의미를 창출합니다. 기능과 형식의 논리를 넘어선 조형미는 오히려 감성적 호소력을 통해 건축을 ‘말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비스바덴 성당이나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마르토라나 교회처럼 장식의 범람은 공간을 초월적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이 점에서 네오바로크는 오히려 미니멀리즘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깊은 감동을 전달합니다.

 

종교와 세속의 경계 허물기

성당이라는 공간은 전통적으로 신성한 영역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네오바로크의 장식 전략은 종교적 상징성을 해체하거나 탈경계화시키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특히 세속 예술과 종교적 장치가 뒤섞인 공간은, 신을 위한 장소이자 동시에 인간을 위한 무대로 확장됩니다. 이로 인해 성당은 점차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재구성됩니다.

 

이러한 경계 허물기는 내부 장식에서도 드러납니다. 세속의 모티프—예를 들어 왕관, 전차, 해와 달의 상징—은 성모 마리아나 성인의 이미지와 나란히 배치되며, 신성과 인간성의 혼재를 연출합니다. 이와 같은 조형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보기 어려웠던 시도로, 교회 건축이 세속적 감각을 흡수하고 재배열하는 공간으로 전환된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성당은 음악회나 회화 전시, 정치적 연설 장소로까지 기능의 확장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다기능성은 성당을 종교적 중심지에서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전환시켰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네오바로크 양식이 가진 시각적·공간적 유연성이었습니다. 즉, 건축양식이 공간의 본질까지 변화시킨 셈입니다.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

네오바로크 건축은 그 자체로는 한 시대의 스타일이지만, 현대 건축에 끼친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장식의 기능을 단순한 외양으로 보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확장해 해석한 점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기틀을 닦은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이는 건축이 기능 중심에서 상징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장식적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한 현대 건축가들—예를 들어 필립 존슨이나 자하 하디드 같은 인물들—에게 네오바로크는 하나의 창조적 레퍼런스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직선과 곡선을 병치하고, 기능보다 정서를 우선시하며, 공간 그 자체를 서사화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차용합니다. 그 결과, 현대 건축은 기능성과 감성, 구조와 조형 사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시 성당의 외관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예컨대 파리의 생트 트리니테 교회나 서울 명동성당의 복원 작업—에서도 네오바로크의 미학적 언어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러한 계승은 단지 과거의 유산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춰 고전적 양식을 재창조하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네오바로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