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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 텍스처로 읽는 성당 건축의 시대성

by 마기슬 2025. 5. 2.

성당 건축은 시대마다 그 정신과 신학적 방향성을 담아내는 상징적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석재의 질감과 텍스처는 단순한 재료 그 이상의 언어로 기능하며, 건축의 시대성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왔습니다. 오늘날 ‘석재의 입말’은 물리적 감각을 넘어, 신앙과 문화의 전이 과정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코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석재 텍스처로 읽는 성당 건축의 시대성
석재 텍스처로 읽는 성당 건축의 시대성

 

고딕 성당의 석재 질감 특징

고딕 양식의 성당은 단순히 높이와 규모만을 자랑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의 성당들은 대부분 석회암, 사암, 화강암 등을 활용해 건축되었으며, 이러한 석재들의 질감은 당시 건축이 추구한 '신성과 천상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석재 표면의 거친 결이나 부드러운 촉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해 공간의 신비로움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쾰른 대성당처럼 고딕 대표 성당들은 석재 자체의 색감보다는 빛이 드리워지는 방식과 그 그림자 효과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사암은 시간이 흐를수록 표면이 부식되며 독특한 무늬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변색과 패턴은 고딕 건축에서 시간이 쌓인 신성함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즉, 석재의 '노화'는 오히려 성스러움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더불어 고딕 성당에서는 석재 조각이 정교하게 이루어진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석재 표면을 따라 이어지는 장미창, 첨탑의 조각 디테일, 벽면의 성인상 등은 석재가 단순한 구조 재료가 아닌 '조형 언어'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석재의 표면이 단지 무늬가 아니라, 성경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마테리얼 내러티브'로 기능했음을 의미합니다.

 

석재 재료의 시대별 변화

성당에 사용된 석재는 시대에 따라 선택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초기 중세에는 지역에서 쉽게 채굴할 수 있는 석재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르네상스 이후로는 석재의 강도와 색상, 가공 용이성 등이 더욱 중요하게 고려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미적 요소 때문만이 아니라, 건축 구조물의 높이 증가에 따라 하중을 견디는 능력 또한 필수 조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7~18세기에 이르러 바로크나 로코코 양식 성당에서는 대리석처럼 매끈한 광택을 지닌 석재가 선호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성당은 시각적 호화로움과 장식미를 강조했기 때문에, 석재 자체가 고급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석재 텍스처가 신성한 공간의 감각적 연출을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근대 이후로는 콘크리트와 철재가 주요 구조 재료로 등장했지만, 외장 마감이나 내부 장식에는 여전히 석재가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 성당 건축에서는 석재를 단순한 장식 요소가 아닌, 지역성과 전통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천주교 성당들 중 일부는 지역에서 채굴한 석재를 그대로 활용하여 지역문화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석재가 단순한 과거의 유물에서 현재적 의미를 지닌 재료로 진화했음을 시사합니다.

 

마테리얼 스토리텔링의 적용 사례

현대 성당 건축에서는 석재를 단순한 구조재나 장식재로 보는 관점을 넘어, 그 자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마테리얼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건축물이 담고 있는 신학적 메시지, 지역의 역사, 공동체의 정체성을 석재를 통해 표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됩니다.

 

프랑스의 롱샹 성당(Notre Dame du Haut)은 이러한 마테리얼 스토리텔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이 성당은 거칠게 마감된 콘크리트 벽과 유기적인 곡선 형태를 통해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며, 내부로 들어오는 빛의 흐름을 통해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처럼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하여 공간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은 현대 성당 건축에서 중요한 설계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박물관은 기존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고, 이를 전시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마테리얼 스토리텔링을 구현하였습니다. 건물의 바닥, 벽, 천장 등에 남아있는 다양한 층위를 그대로 드러내어, 관람객들이 건축물 자체를 통해 한국 천주교의 변천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이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넘어, 역사적 맥락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건축적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대 성당 건축의 석재 활용

현대 성당 건축에서는 전통적인 석재의 물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건축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요구와 감성에 부합하는 공간을 창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예를 들어, 용인 보정성당은 전통적인 석재를 활용하면서도 현대적인 형태와 공간 구성을 통해 새로운 성당 건축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외벽에 사용된 석재는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리면서도, 내부 공간은 밝고 개방감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신자들에게 편안한 예배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석재의 전통성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롭게 결합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대전의 한 성당은 전통적인 석재와 현대적인 유리 소재를 결합하여 독특한 외관을 구현하였습니다. 석재의 무게감과 유리의 투명성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낮에는 자연광이 내부로 유입되고, 밤에는 내부 조명이 외부로 퍼져나가는 효과를 연출합니다. 이는 석재의 물성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성당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