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성당 건축에서 ‘필로티’는 단순한 건축기법을 넘어, 신앙과 비신앙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닫힌 성스러운 공간에서 벗어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재해석된 현대 성당은 이제 건축을 통해 시대정신을 드러냅니다.
필로티 구조의 상징성
필로티는 건물 하부를 기둥만으로 떠받쳐 지면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형태는 르코르뷔지에가 제시한 ‘근대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중 하나로, 건축물이 대지로부터 떠오름으로써 새로운 공간 질서를 만든다는 개념을 반영합니다. 현대 성당에서 필로티는 단순한 구조적 수단을 넘어, 성스러운 공간과 세속적 일상의 경계를 흐리는 매개로 활용됩니다. 즉, 성당의 하부가 물리적으로 열려 있음으로써 ‘신성’이 반드시 벽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성당이 특정 종교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장소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건물 아래의 필로티 공간은 비신자에게는 그저 그늘진 쉼터가 되고, 신자에게는 기도 전 침잠의 공간이 됩니다. 이처럼 기능적으로는 중립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는 신성과의 연결을 암시하는 독특한 이중성을 가집니다. 특히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성당일수록 이 구조는 더욱 강한 메시지를 던지게 됩니다.
필로티는 또한 도시 환경 속에서 건축의 ‘여백’을 창출합니다. 폐쇄적인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그 아래로 바람이 통하고 사람이 지나다니는 유기적인 구조는 성당을 자연스레 공동체와 연결짓습니다. 마치 과거의 마당이나 정자처럼, 머무르고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 되어 신앙이 일상과 조우하는 순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필로티는 단순한 디자인의 선택이 아닌, 종교 공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정적인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신건축주의와 개방성
신건축주의는 과거의 형식주의적, 상징주의적 건축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경험과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건축 사조입니다. 현대 성당에 적용된 신건축주의는 더 이상 높은 첨탑이나 스테인드글라스 중심의 장식적 구조보다는, 빛과 공간의 흐름, 그리고 열림의 철학을 강조합니다. 이는 ‘신자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세속적 삶의 현장과 맞닿은 ‘열린 성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큰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개방형 성당의 전형으로 꼽히는 서울의 ‘명동성당 문화관’ 사례를 보면, 1층 로비나 야외 필로티 공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벽면 유리창과 외부로 열린 천장은 빛을 통과시켜 내부를 환하게 밝혀주고, 동시에 공간이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투명성은 단순한 채광을 넘어서, 종교적 권위와 폐쇄성에 대한 탈구축(deconstruction)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신건축주의는 종교성과 기능성을 동시에 담는 유연한 설계를 지향합니다. 내부 공간은 고정된 의자 대신 가변형 좌석 구조를 채택하여 예배 외에도 콘서트, 전시,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릴 수 있도록 설계됩니다. 이는 성당이 신자의 기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도시민 전체를 위한 열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전환입니다. 건축의 개방성은 곧 공동체적 포용력을 상징하며, 신앙과 일상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을 만듭니다.
빛과 그림자의 시간성
빛은 종교 건축에서 단순한 채광 요소를 넘어, 신성함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매개로 기능해왔습니다. 현대 성당에서는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연광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시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특히 구조적으로 열린 천장이나 벽체의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하루의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며, 정적인 공간 안에 동적인 감각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기도자의 내면 상태와도 맞물려 영적인 몰입감을 배가시킵니다.
예를 들어, 제주 중문에 위치한 '테쉬폰 성당'은 아치형 지붕 구조 사이로 쏟아지는 자연광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합니다. 오전에는 성소 내부가 환하게 밝혀져 생명과 시작의 이미지를, 오후에는 그림자와 대비되어 고요한 명상적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빛과 어둠의 변화는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공간이 살아 숨 쉬며 신앙적 감정을 유도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저녁 무렵에는 인공조명이 개입하기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성당은 이때조차도 은은한 간접조명을 통해 빛의 흐름을 조율합니다. 이는 단순히 밝기 유지가 아니라, 성스러움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조율하는 행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시간성’은 결국, 건축이 신앙 행위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그 깊이를 조용히 안내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성과 공간의 경계
전통적인 성당은 외부 세계와 확연히 구분되는 고립된 공간으로 설계되어 왔습니다. 입구에서 문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세속’은 차단되고, ‘성스러운 경험’이 시작된다는 이분법적 구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성당은 이러한 경계를 점차 허물고 있으며, 그 변화의 핵심은 공간 구성 방식에 있습니다. 물리적 경계보다 ‘감각적 전환’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신성과 세속의 구분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반포성당’을 방문해보면, 정문 앞에 놓인 작은 광장과 그 주변의 벤치들이 인상적입니다. 이 공간은 성당 내부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머무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합니다. 노인들이 햇빛을 쬐며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뛰노는 이 광장은 종교적 기능과 일상적 기능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성당은 그 자체로 신앙의 장소이지만, 이처럼 문턱을 낮춘 경계 설정은 ‘비신앙자도 환대하는 공간’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또한 이러한 공간 전략은 공동체와의 관계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 외에도, 문화행사나 상담, 소모임을 위해 성당을 찾는 비신자들은 이 공간을 ‘공공 자원’처럼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계의 확장은 종교가 사회 속에서 고립되지 않고, 삶의 다층적 요구를 수용하는 개방적 실천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즉, 공간은 단지 건축물이 아니라, 공동체적 신뢰를 매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합니다.